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위 요구자/아시아/일본 (문단 편집) === 류큐국 중산왕[anchor(류큐)] === ||<-2> [[파일:1280px-Japanese_Crest_mitu_Tomoe_1.svg.png|width=200]] || || 관련 칭호 || 유구국 중산왕(琉球國中山王)[br]류큐 번왕(琉球藩王)[br]일본 제국 후작[br]일본 제국 남작 || || 왕위 요구자 || 쇼 마모루 || || 전임자 || 쇼 히로시 || || 후임자 || 쇼 타케시 || || 계승 실패 원인 || 1872년 류큐 번으로 강등[br][[오키나와현|1879년 번왕국 멸망]][br][[일본국 헌법|1947년 귀족 작위 폐지]] || 만국진량(萬國津梁)으로서 번영을 누려 오던 [[류큐 왕국]]은 [[1872년]] [[일본 제국]]에 의해 '류큐 번'으로 강등되었으며, [[1879년]]에는 [[오키나와현]]을 설치해 류큐 왕국은 멸망했다. 류큐 왕국의 왕은 [[삼산시대]] 이래로 [[명나라|명]]·[[청나라|청]]으로부터 유구국 중산왕의 칭호를 책봉 받아 썼다. 일본이 일방적으로 합병을 선언하고 류큐 번을 설치한 뒤 일본에서는 류큐 번왕의 칭호를 내렸지만 류큐 왕국은 계속 유구국 중산왕 칭호를 사용하며 청과 교류하였다. 류큐 번 폐지와 오키나와 현 설치 이후 류큐의 마지막 군주인 [[쇼타이]](尚泰)는 왕위에서 강제로 퇴위돼 도쿄로 강제이주되고, 1885년 후작에 봉해졌다. 두 아들은 남작위를 받았으며, 장남이 후작위를 계승했다. 쇼타이의 차남 쇼인(尚寅) 남작과 사남 쇼준(尚順) 남작은 일본의 오키나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자치 형태로 쇼 씨 일가를 지배자로 복귀시키는 복번 운동을 벌였으나 일본 정부는 당연히 이를 거부하였다. 이후 일본이 [[제2차 세계 대전]]에서 패전하고 현 [[일본국 헌법]]이 발효되면서 귀족 작위는 폐지되었다. 현 왕위 요구자 쇼 마모루(尚衞)는 쇼타이의 현손자로 1996년부터 왕위를 요구하고 있다. 그러나 류큐 독립이 이뤄질 가능성도 희박하고 현 일본 내에서 황족 외에는 임명되지 않는 왕으로 책봉해줄 가능성도 거의 없다. 그보다 낮은 오등작 역시 현행 헌법 제정 후 폐지되었는데 오직 쇼 마모루만을 위해 예외적으로 부활시켜 줄 가능성도 제로에 수렴한다.[* 어차피 구 일본 제국의 오등작 제도를 그대로 부활시키는 것이라면 쇼씨 왕가의 숙원을 달성할 수 없다. 구 일본 제국의 오등작은 봉토가 없는 작위이기 때문에 쇼 마모루가 쇼타이처럼 후작에 봉해져도 류큐 지역의 명목상 지배자로 군림할 수 없다. 과거에 쇼인 남작과 쇼준 남작이 괜히 복번 운동을 한 게 아니다.] 그리고 그나마 있는 소수의 [[류큐 독립 운동]] 참여자들은 군주제 지지는커녕 좌파 성향이 강하고 대개 류큐 공화국 건국을 추구하고 있다.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쇼 마모루가 왕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.[* 쇼 마모루 본인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지, [[류큐 왕국|류큐 왕실]] 소유의 유물과 유적지의 대부분을 [[일본]] 정부와 [[오키나와현]] 현청에 기증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